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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간당 김화의 장구지소를 찾아

기사승인 2019.08.30  01: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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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산동면 목동마을은 천황봉 줄기가 뻗어내려 큰 연화산과 싸리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계곡을 풍곡이라 하고 풍곡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면 부안김씨의 집성촌 목동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앞으로 흐르는 요천의 거북이 마을을 향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어서 예부터 부자마을로 넉넉한 인심과 뛰어난 자연경관이 잘 어우러진 마을이다.

목동마을 상류에 풍곡에서 내려온 물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데 무엇보다 옛 정취를 한껏 품고 있는데 작은 정자 재간당(在澗堂)이 일품이다.

재간당은 이 정자의 주인인 김화(金澕)의 호이다. 본관은 부안이며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 목동에서 태어나 이괄의 난에 창의하여 의병을 이끌고 여산까지 올라가다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오기도 했다.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흥의 옛집에 머물고 있다는 말에 광해군은 그를 남원부사로 임명하였다. 유몽인이 임지인 남원에 도달하자마자 먼저 찾은 사람이 바로 재간당 김화이다. 김화와 유몽인 그리고 여러 지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다 그대로 정자에서 잠들었다고 한다.

풍곡의 맑은 물이 흘러내려 빼어난 풍치를 자랑하는 정자 주변은 재간당 김화의 장구지소(杖屨之所)라 할 수 있다. 특히 바위에 새긴 세이암(洗耳岩)은 세상의 어지럽고 혼탁함을 닦고자 했던 재간당의 신념을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하마대(河馬䑓), 수용정(水舂亭), 추모대(追慕坮) 등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특히 수용정 각자가 있는 층층석대 사이에서 흘러나온 석수가 두 홈 정도 고일 샘을 만들고 얕은 물길도 내었다. 작은 표주박으로 한두 번 뜨면 바닥이 드러날 정도의 샘을 보면서 물이 찰 때까지의 기다림과 과하지 않음을 추구하는 재간당의 면모를 보는 것 같다.

부안김씨가 목동에 세거 한 뒤 대대로 많은 인제를 배출하였고 산동방, 목동방 뿐만 아니라 주변 향촌사회의 교육을 이끌어왔던 요계서원은 폐철되고 옛터는 그 흔적마저도 사라지고 잊혀 가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가 고개를 숙였지만 목동마을 재간당 정자에 올라 옛 선현을 떠올려보고 풍곡의 맑은 물에 요즘 일본의 막말로 더럽혀진 귀를 씻어 보면 어떨까?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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