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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일 재경송동면향우회장/ (주)광일토건환경 대표

기사승인 2019.08.30  00: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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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노력으로 극복한 자수성가의 사업가

‘생활의 1%를 이웃에게’ 나눔 실천에도 앞장

 

박노일(61·사진) 재경송동면향우회장은 ‘자수성가한 사업가’, ‘사업으로 성공한 향우’, ‘어려움 나누는 기업가’ 로 널리 알려진 남원의 대표적 출향인사 중 한명이다.

‘자랑스런 남원인’ 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본인이 한사코 손을 내젓는다.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좀 더 벌었고, 있는 것을 조금 나누고 사는 것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성공’이라는 말은 쉽게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가난 때문에 생선장수가 된 14살 소년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고, 그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는 이야기는 그리 드믄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14살의 나이에 ‘생선행상’을 시작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삶의 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엔 ‘생선 사세요’라는 외침이 나오질 않아 속울음을 삼키기는 날이 여러번 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정을 딱히 여긴 아주머니 한 분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데려가 생선을 팔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소박한 도움이 평생의 가르침으로 남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 시기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하는 결심을 세우는 계기가 됐죠”

박노일 회장의 ‘성공’에 대한 각오와 ‘나눔’의 가치 실현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1년여 남짓 하던 생선행상을 접은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그는 운전을 배우기 위해 트럭 조수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그는 트럭운전수가 돼 일거리를 찾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25살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에는 큰돈이었던 천몇백만을 주고 중고 덤프트럭을 구입해 골재납품업을 시작했다.

아주머니의 도움을 기억하는 그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업상의 이익을 배려하는 윈-윈하는 전략’으로 거래처를 파고들었다. 마침 건설경기가 호황을 맞아 사업도 번창하게 됐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사업은 1990년대 초 건설경기 둔화라는 국가적 요인으로 서서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사업 지속여부를 고민하던 차에 우연찮게 접한 건설폐기물 수집·운반업의 가능성을 알게 되었고, 성실함을 무기로 다시 거침없는 도전을 시작했다.

운수업을 통해 쌓아 놓은 업계의 신망과 성실한 그의 성품은 동종업계에서도 서서히 인정받는 기회로 다가왔다. 회사는 날로 성장했다. 꾸준한 도전과 성실한 노력으로 지금은 종합건설회사와 운수회사를 비롯해 7개 계열사를 소유한 중견그룹으로 도약했다.

 

성실과 배려, 나눔이 사업과 인생의 철학으로

 

박 회장은 2004년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실질적인 회사경영을 맡겼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왔으니 나잇값, 호주머니에 돈 모으는 것보다는 사회에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 우리 직원들, 그리고 제가 관여할 수 있는 세상을 챙기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어요.”

그는 이제 주변을 널리 살피고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우리 시대의 사업가로 제2의 사업인생을 꾸려가고 있다.

그것의 중심에는 나눔이 있다.

 

 

그는 약관의 나이부터 기부를 시작했었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고 받은 첫 월급을 털어 시계 12개를 샀다. 그리고 고향 송동초등학교에 전달하며 가난하지만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격려의 표시로 나누어 주라고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매달 모교에 소정의 금액을 기부하고 있다. 40여년이 넘는 햇수다.

회사가 있는 용인과 집이 있는 서울에서도 주변을 돕는 일은 일상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회사 내에서도 ‘생활의 1%를 이웃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소외계층인 장애인과 노인을 위해 전동휠체어가 탑재된 차량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사회사업을 꾸준히 제공하고 하고 있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남원, 언제나 마음의 고향

 

박 회장은 2017년 3월 재경송동면향우회 제7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향우회는 초대 이승재 회장과 2대 소순기 회장, 3·4대 조봉익 회장, 5대 이춘호 회장, 6대 김현곤 회장을 거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으나 2011년부터 6년여 동안은 침체에 빠졌다.

향우회를 맡아 집행부를 이끌 만한 인사가 없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공백기를 갖게 된 것이다.

박 회장의 추대는 침체된 향우회를 다시 활성화 시켜보자는 주변의 염원이다.

덩달아 바빠진 사람은 조양훈 사무국장이다. 그는 요즘 향우회원들의 명단을 추스르며 흐트러진 향우회 골격을 일으켜 세우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두 고향에 대한 정을 잊지 않고 있는 탓이다.

박 회장은 취임 당시 “서울, 경기 등에 흩어져 있는 향우들을 결속해 스스로 참여하고 감동을 주는 향우회를 만들겠다”며 “고향에도 도움이 되도록 지역 농·특산물 애용에 앞장서고 자녀와 고향방문 등 고향희망심기사업에도 적극 참여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재경송동면향우회의 앞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재경송동면향우회는

1994년 창립됐다.

초창기 400∼500명이던 회원들은 2000년대 초 1,000여명까지 늘어나며 크게 활성화 됐다.

지금은 다소 결속이 흐트러진 상태지만 박노일 회장이 7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격년으로 나눠 3월에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8월에 고향 면민의 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연말에는 원로 회원들을 모시고 송년회를 갖는다.

주요 출향인사로는 조봉익 전 대한법무사협회 부회장(전 경기도 법무사협회회장),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차관, 이승재 전 순천지방철도청장, 강상구 전 한국농촌희망재단사무총장(농림부 이사관 출신), 강병식 전 한성대학교 국제대학원장(한·호주 교환교수), 이춘호 전 재경남원향우회장(신흥AR 회장), 김동현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양충모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등이 있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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