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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명창 이화중선 <5>

기사승인 2021.02.25  22: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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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중선이 막 민요 몇 대목을 부르고 돌아 온 동생 이중선을 불렀다.

“내 몸이 아무래도 이상허구나. 방울이 동생허고 공연허는 어사와 춘향모 상봉 대목언 니가 해야될지도 모르겄구나.”

“몸이 겁나게 안 좋소? 다른 건 몰라도 무대에서 소리허는 것언 나헌테 양보럴 안 허던 언니가 별 일이요.”

“만약얼 몰라서 미리 부탁허는 것이여. 추월만정얼 부르고도 내 목이 괜찮허면 내가 헐 것인깨 그리 알고.”

“알았소.”

둘이서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쑥대머리를 끝낸 임방울이 저고리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돌아왔다. 청중들이 재창을 외쳤으나, 사회를 보는 임상문이 임방울 명창은 잠시 후에 다시 나오게 되어 있으니 참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화중선을 불러냈다.

이화중선이 목을 몇 차례 끅끅거리다가 무대로 나갔다.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주렴에 비쳐들제’하고 첫 대목을 시작하는데 청중들의 열기가 무대까지 훅 느껴졌다. 다시 목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이화중선이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여기서 소리를 망치면 안돼. 제발...제발... 하늘이 무너져도 이 대목언 마쳐야허능구먼.’

이화중선의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객석의 청중들이 안개 속에 있는듯 어슴프레 보였다. 이화중선의 뇌리로 문득 소리 한 대목 얻겠다고 고래고래 악을 쓰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던 남원 육모정계곡의 구룡폭포며 지리산 뱀사골의 병풍소며 달궁골의 집채더미만한 바위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이년아. 그것도 소리라고 허고 자빠졌냐? 타고난 목이라고 실타래 풀리듯이 술술 잘 풀리고는 있다마는, 그 좋은 소리가 얼매나 갈 것같으냐? 타고난 목은 오래가는 벱이 아니여. 바람 한번 잘못 맞아도 도망가 뿔고, 눈비 한번 잘못 맞아도 내 멋 빨아라, 허고 도망가는 것이 타고난 목이여. 그걸 니 목얼 맹글어야혀. 피럴 토허고 토해서 지리산 계곡물을 핏물얼 맹글고, 지리산 천왕봉얼 한달음에 내달음서 불러도 숨도 안 가쁜 니 소리럴 맹글어야혀. 우리는 공연얼 목적으로 댕기는 공연단인깨, 아직언 니가 슬 자리가 없구나. 가서 많이 더 배와가꼬 오그라.

그것이 언제였더라. 이화중선이 열 여섯 살 때에 남원 수지 홈실마을의 박씨한테 시집을 가서 2년 남짓 살고 났을 때였다. 송만갑 협률사가 들어와 공연을 가졌는데, 사흘을 내리 제일 앞자리에 앉아 구경하던 이화중선이 밤보따리를 쌌다.

구례를 향해 앞밤재를 넘어가는 공연단 일행을 겨우 따라 잡은 이화중선에게 소리 한 대목을 시켜 혀를 끌끌차며 듣고 난 송만갑이 모진 소리를 했다.

‘모질고도 모질구나. 송명창님이 모질구나.’

그날 이후 송만갑이 모질다고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모진 송만갑보다 더 모질게 소리공부에 매달렸다.

‘두고 보드라고. 내가 조선팔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명창이 되어 찾아갈 것인깨’

자칫 소리공부에 게을러지면 이화중선은 목에서 피를 서너 동이나 쏟은 다음에 찾아오라던 송만갑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하고, 어찌어찌 송만갑이나 이동백같은 큰 소리꾼들과 공연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화중선이 소리를 하고 있는지, 그냥 서 있는지, 정신이 아리송해지는데 ‘재창이요, 재창’하는 함성과 함께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공회당 천장을 쾅쾅 울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번쩍 차린 이화중선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인사는 하는둥 마는둥 무대 뒤로 돌아왔다.

“애쓰셨소, 언니. 오늘따라 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디다. 그 기운이면 어사와 춘향모 상봉대목도 허겄습디다.”

이중선이 말했으나 이화중선이 어서 무대로 나가라는 손짓을 하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문을 닫고 겨우 참았던 기침을 쏟아내자 목구멍 안 쪽에서부터 피비린내가 치솟아 올라왔다.

‘내가 기언시 폐병이 도졌구나. 어찌할꼬? 이 일얼 어찌할꼬?’

<다음호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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