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사람 한병옥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일부입니다.
이 중에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밑불은 단연코 김주열 열사입니다. 김주열은 3.15의거 당시 마산에서 순국하였고, 4월11일 마산 중앙부두에서 27일 만에 부활하여 전국적으로 4.19혁명을 일으킨 우리나라의 현대 민주 혁명을 완성한 분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김주열 없이는 세계 민주 역사에 4.19 민주 혁명이 있을 수 없으며, 3.15민주 의거도 제대로 빛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에 두 곳의 민주 묘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마산의 국립3.15민주묘지와 서울의 국립4.19민주묘지는 김주열 열사로 인해 만들어진 묘지입니다. 두 곳 민주 묘지에는 김주열의 묘가 모셔져 있지만 모두 가묘(허묘)입니다. 누구든 김주열 없이는 그 민주 묘역의 근본과 내력을 이해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허묘이지만 모시지 않을 수 없기에 만들어진 현상입니다.
열사의 진묘(진짜묘: 시신이 묻힌 묘)는 열사의 고향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선산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곳은 열사가 태어나신 마을입니다.
김주열 열사는 금지 용정초등학교와 금지중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남원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재수를 위한 장기 결석으로 퇴학을 당하였고, 1960년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했지만 입학하지도 못한 채 순국했습니다. 사망일이 3월 15일이니 (3.15의거 당일) 당연히 마산상고 학생이었을 것으로 인식될 것이지만 당시에는 학년 변동이 4월 1일자 기준이어서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러 갔다가 시위에 참여하였고 흉폭한 독재의 최루탄에 순국하였습니다.
그분의 모교는 용정초등학교였지만 지금은 이전하여 금지동초등학교로 바뀌었고, 잠깐이나마 다녔던 남원농업고등학교는 용성고등학교로 바뀌었고 입학해 보지도 못했던 마산상고는 용마고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학교 이름과 자리가 모두 제대로 남아 있는 학교는 유일하게 금지중학교가 있을 뿐입니다. 그 유일한 흔적이라 해야 할 김주열 열사의 모교 금지중학교도 이젠 사라져 버릴 위기에 있습니다.
흔히 남원을 평가할 때 양반고을, 선비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대척점에 큰 인물이 없다는 말이 따라붙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인물이 없다니요. 3.15민주의거를 4.19민주혁명으로 끌어 올린 기폭이자 도화선으로 민주 성전의 반상에서 완결까지를 이룩해 낸 인물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인물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두 곳에 민주 묘역을 만들고 세 곳에 국가 공식 묘역으로 등극하실 수 있을까요? 남원에서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동상을 몇 천만원을 들여 가장 큰 동상으로 기리고 있을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2001년 4.19혁명 기념행사에 전라북도지사, 남원시장이 참석했는데 남원 역사상 최초로 실존 인물의 도로명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도로명은 누구의 어떤 작용인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그의 모교가 사라지려고 합니다. 남원만의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전 도민, 전 국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분 들이 떨쳐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전에 지역에서, 교육계에서 모든 정치 행정력을 동원하여 남이 알까 무섭게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의 최고 선봉장인 김주열 열사에 대한 예우일 것입니다. 반드시 김주열의 도로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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