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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의 시조 가왕 송흥록 <14>

기사승인 2019.08.19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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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가왕님 정도면 이제 제자 하나쯤은 두어도 될 때가 된 것이 아닙니까?”

“내 소리도 안즉 멀었느디, 넘얼 갈친다는 것이 주제넘은 짓 같혀서 안 그요.”

“소리꾼이 다 송 가왕 같은 맘이면 조선에 소리의 맥이 끊어집니다. 그런데, 자네가 주덕기 명창 밑에서 소리를 배웠다고 혔능가?”

모흥갑이 물었다.

“예, 그렇구만요. 글고 본깨 명창님도 기억이 나능구만요. 그것이 저 재작년이던가요? 몇 분 명창덜이 다가정에서 소리럴 헌 일이 있제라우. 그때 주 명창께서 소리럴 한바탕 허시자 청중덜이 주 명창이야말로 천하의 명창이라고 치켜세웠지라우. 헌깨, 주 명창님이 기고만장혀서 모흥갑의 소리가 어디 소립니까? 송흥록언 더 말헐 것도 없지요, 하고 교만허게 나오자 모 명창님께서 안 그러셨습니까? 나 모흥갑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으나, 가왕이신 송흥록 명창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주 명창님의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꾸중얼 허셨지요.

송 가왕님얼 제가 마음에 뫼신 것이 그때부터였을 것이구만요. 천하의 명창이신 모흥갑 명창님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분이라면 내 목심얼 걸고 제자가 되어도 좋겄구나, 하고 생각혀 뿌렀당깨요.”

“허허허, 자네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던가? 주 명창이 소리는 좋은데, 오만방자할 때가 더러 있제. 소리꾼이 자신의 소리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 소리를 올리기 위해 남의 소리를 끌어내려서는 안 되지. 어떻습니까? 송 가왕님. 저 친구의 각오가 대단한 것 같으니 제자로 받아주시는 것이.”

“글씨요. 헌디, 주 명창이 다가정에서 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요이.”

“그런 일이 있었지요. 지나간 얘기니까 염두에 안 두셔도 될 것입니다.”

모흥갑의 말에 송흥록은 그가 정말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았다. 얼굴을 앞에 놓고 온갖 달콤한 말로 아부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건 자신의 소리를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모 명창께서 모처럼 그러라고 하시니, 저 아이를 제가 제자로 받아들이지요. 이놈아, 모 명창님을 나처럼 모시그라. 원래 군사부일체라고 했으니, 모 명창님을 아버님처럼, 상감처럼 뫼시그라. 언제 어디서 뵙건 나를 대하듯이 대하그라.”

“하먼요, 이를 말씀이십니까?”

박만순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그날로 송흥록은 박만순을 데리고 남원행을 서둘렀다. 내려오는 길에 사매 유 부자 집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리정 앞을 지날 때였다. 오리정에서 눈물로 이몽룡을 보내는 춘향가 한 대목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가 싶더니, 맹렬이의 얼굴이 머릿속을 가득히 채우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었다.

하이고, 빌어묵을 년. 안즉도 내 안에 남아 얼쩡거리고 있네이. 이런 맴으로 돌아가봐야 날이면 날마다 그년 생각에 내가 염병얼 앓는 것맨키로 끙끙 앓다가 속병이나 들기 십상이제. 안 되겄구나. 내가 그년얼 내 가심에 몰아낸 담에나 고향으로 가야겄구나.

오리정 앞에서 송흥록이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호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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