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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제의 시조 가왕(歌王) 송흥록 <3>

기사승인 2018.12.11  02: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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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 한때 권삼득의 고수노릇을 했던 송 첨지는 북가락은 물론 소리 또한 어지간한 소리꾼은 왔다가 뺨맞고 갈만큼 한 대목씩 하는 사람이었다.

따지고 보면 송흥록이 소리꾼의 길로 들어선 것도 아버지 송 첨지 때문이었다.

권삼득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북을 쳐주다 보면 소리꾼의 소리에 스스로 황홀하기도 했고, 권세가 당당한 양반들조차도 ‘과히 천하의 명창일세, 하늘이 어찌 권 명창 같은 명창을 이 시대에 내었던고?’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을 듣다보면 은근히 샘이 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내 자식에게도 소리를 가르쳐야지, 꼭 명창을 만들고 말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었는데, 다행히 큰아들 흥록이 어려서부터 기골이 우람하고 얼굴에 귀티가 있으며, 머리 또한 영리하여 서너 살 때부터 천자문을 가르치면 또래들보다는 서너 걸음은 앞서 나갈 뿐만 아니라, 장난삼아 가르친 소리가락을 서당에 오고가면서 흥얼거리는 모습이 청이야 젖비린내가 난다고 치더라도 가락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딱딱 맞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옳다 됐구나, 저 놈이 필시 권삼득을 뛰어넘는 명창이 되겠구나, 하고 무릎을 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맹렬이 땜시 지 목구녕이 뒤집혔던 개비요. 무심중에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을 본깨.”

흥록이 시큰둥이 대꾸하자 송 첨지가 “아니다, 아니여”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심중에 나온 소릴망정 애원성으로는 그만헌 소리도 없니라. 내가 권 명창의 고수노릇을 다섯 해 남짓 혔다마는, 귀곡성언 니가 낫니라. 거그다 방금 니가 부른 그 소리꺼정 합허면 니가 권 명창보담 나실 것이니라. 맑은 정신으로 곰곰이 되새겨서 그 소리가락얼 온전헌 니껄로 맹글아 보그라. 무신 소리냐허면 시방 니 심정이 말이 아닐 것인깨, 쩌그 구룡폭포에라도 가서 다만 며칠이라도 독공얼 허고 오란 말이다.”

“독공얼 댕겨오라고라우?”

맹렬의 뒤를 쫓아 팔령치를 넘을 생각을 하고 있던 흥록이 고개를 들어 송첨지를 바라보았다.

“맹렬이가 너헌테 선물을 주고 갔구나. 그 아이 땜에 니가 새로운 소리가락얼 얻는다면 그 동안의 인연이 씨잘데기없는 헛 인연언 아닌 심인깨. 니가 기생덜허고 놀건 어쩌건, 맹렬이라는 그 아이럴 두 번이나 집으로 델꼬오건 어쩌건 그대로 두고 보았던 것언, 그런 것도 다 니가 소리꾼으로 커 가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기 땜이니라. 삼시세판이라는 말도 있니라마는, 남녀관계에서는 해당이 안 되는 소리니라. 시방언 니가 맹렬이 가가 없으면 숨이 깔딱 넘어갈 건맨키로 환장얼 헐 것이다만, 지내놓고 보면 허허 웃을 일일수도 있겄제.

글고 한 번 집얼 나가 버릇헌 여자는 믿을 것이 못 되니라. 데려다 노면 또 나갈 궁리부터 헐 것인깨. 나갈 핑계거리부터 찾을 것인깨. 사람의 한평생도 그렇다마는 소리꾼의 한평생도 결코 긴 것언 아니여. 그까짓 계집 때문에 애면글면 허송세월얼 혀서야 쓰겄느냐? 어떠케 헐레? 구룡폭포에 갈래? 안 갈래? 너헌테도 내가 얘기럴 혔다시피, 내가 거그서 권 명창얼 안 만냈냐? 권 명창이 꼼짝없이 죽을 목심얼 소리 한마디로 살려내고, 권문으로부터 파문을 당허고 처음 찾아온 곳이 구룡폭포가 아니었냐? 거그서 소리 공부럴 허는디, 소리 한바탕 허고 콩 한 알얼 넣고 헌 것이 콩얼 몇 말이나 폭포 속에 넣었다고 안 허냐? 니가 물론 백운산 백운암의 월광 선사님께 배운 십년 세월이 결코 권 명창보담 못허다고넌 안 허겄다만, 기왕 새로운 소리가락얼 얻었응개, 다먼 며칠이라도 독공얼 혀서 온전헌 니껄로 맹글았으면 싶구나. 니가 맹렬이럴 쫓아가고 싶어허는 그 맴얼 모르는 것언 아니다만, 니가 참말로 천지럴 진동시킬 명창이 될라면 애비 말얼 따라주었으면 좋겄구나.”

송 첨지의 말이 간곡했다. 어린 시절, 소리를 가르치다가 소리가락이 비끄러지면 탱자나무 북채로 어깨뼈에 어혈이 지도록 후려치던 그런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용조용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흥록의 마음을 움직였다.

흥록이 고개를 번쩍 들고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대구했다.

“아부님 말씸얼 따르겄구만요. 맹렬이럴 잊고 소리공부에 매진얼 헐랑구만요. 시방 당장에 독공얼 떠나겄구만요.”

<다음호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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