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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빨치산, 남부군 45사단장 남원의 황의지(黃義智) <2회>

기사승인 2023.03.20  04: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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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서호련

 

 

 

 

 

 

 

( 백선엽장군이 말하는 남부군 45사단장 황의지)

. 이 글은 필자의 생각대로 쓴 소설이 아니다. 이념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 남원출신 빨치산지도자요 우리들의 바로 이웃인 한 민초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다. 필자는 그의 자서전 ‘장군의 후예’ 속에 기록된 그의 빨치산 투쟁활동을 요약해 정리했다. 지리산 빨치산 전란은 우리 한국현대사의 최대 비극적 역사이다. 그 3년여 지리산전투 중에 희생된 아군의 전사자만도 6,333 명에 이른다. 황의지는 남북분단과 좌우의 이념 틈바귀 속에서 몸부림치며 온갖 도전과 응전을 펼치면서 생애를 살았으며 그의 빨치산 투쟁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한편의 역사성 서사시라고 할만하다. 때문에 이 글은 지리산 전란을 겪어보지 못한 이 시대 우리들 후세들에게 큰 교훈이 될 수도 있다. 그의 회문산 입산에서부터 신출귀몰한 그의 유격전술, 도주와 생포, 그리고 탈주, 그의 전술에 의해 전멸됐던 250여명의 우리군경의 의 비극, 그리고 마지막 생포와 전향과 더불어 지리산에 정착했던 그의 삶. 그 외에 백선엽장군의 지리산 빨치산토벌작전, 지리산 대성골에서의 빨치산 대 섬멸, 그리고 이어진 빨치산의 몰락과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최후도 담게 된다.

(1951년 5월 중순 덕유산에서 빨치산6개도당회의의 결정에 따라 각 도당유격대는 이현상의 남부군 지휘 아래 들어가고 빨치산 부대의 개편도 이루어졌다. 남부군은 사령관 이현상, 부사령관 이영회를 중심으로 제1전구(전북북부와 충남)와 제2전구(전북 남부)로 나뉘어졌다. 제1전구는 충남빨치산 5백 70명을 68사단(사단장 고판수)으로, 황의지 사단장이 이끄는 전북 북부지방의 빨치산 유격대 45사단은 남부군으로 편입, 개편했다. )

 황의지라고 하면 남원의 대부분의 나이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황의지, 아아 그 빨치산! 이런 식이었다. 당시에 필자가 소속 되어 있던 교회의 세계총재이신, 스위스인 리쳐드 훼어(R.Fehr) 필리핀 국빈 방문 때 우리 한국교우 100여명도 기념예배에 참여 할 겸 마닐라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예배에서 필자는 훼어 총재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았다) 그 때 남원 지리산지역의 사역을 맡고 있던 달궁 마을 옆 동리, 덕동에서 거주했던 이종안 사제의 추천으로 뱀사골 입구 반선마을에 살고 있던 노인장 한 분도 함께 동행 하여 4박 5일 간 마닐라를 여행 한 적이 있었다.

뒤에 알고 보니 이 노인장이, 말로만 들어 왔던 그 유명한 빨치산, 황의지라는 사실을 알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사실 필자는 1980년부터 남원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남원의 토박이 인물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황의지라는 사람은 북한출신의 빨치산 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남원 사람들에게 그에 대하여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아 그 빨치산 !’ 이라고 말하는데, 더불어 하는 말은 그가 뻥이 심한 허풍쟁이 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최근에 박찬두 작가가 그의 수기를 정리한 저서를 읽고서야 그가 남부군 휘하 45사단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유명한 빨치산 지도자였으며 조선조 황희 정승, 절명시의 항현, 임진왜란시의 황진장군의 후손이란 것도 알게 된 것이다.

빨치산 사단장, 황의지의 투쟁사를 읽어보니 그를 깊이 알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그의 빵이 대단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서울에 살았던 어떤 분이 시골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서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때 마치 뻥을 트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듯이, 황의지의 국가관과 사상. 이념 그리고 투쟁의 역사가, 일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가 한 말들을 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필자가 그를 일찍 알았더라면 그를 통해서 지리산 빨치산 전란에 대하여 많은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 사무실 책상 유리 밑에는 전세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은 마닐라 방문단의 사진 한 장이 들어있다. 사진속의 황의지는 용모부터 범상치 않다. 하얀 머리, 휜 수염을 길게 늘어트리고 모시 남방에, 금테안경을 쓴 그의 눈빛과 당당하고 늠름한 체격에서 마치 도사와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아래 백선엽장군의 저서 <실록 지리산>에서도 그가 얼마나 유명했던 빨치산 사단장이었는가를 엿 볼 수 있다. 다음은 백선엽 장군이 십 수 년 전에, 빨치산 토벌 전에서 전사한 영령을 모신 남원 뱀사골입구의 위령탑을 방문하면서, 귀순후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던 남부군 45사단장 황의지 씨를 극적으로 만나고 그와 대화했던 내용을 그의 저서 <지리산실록>에 기록했던 것이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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