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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누른대 출신, 조선조시대 충신 유자광<4>

기사승인 2021.09.10  02: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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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에 백호를 만나다

자황이 몇 번의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난 다음이었다.

자광의 나이 열 세살 때였다.

막 장가를 들어 아내를 데려다 놓은 자황이 할머니 남씨와 아버지 앞에서 말했다.

-아무래도 사찰에 들어가 공부에만 전념해야 겠습니다.

-그것은 안 된다. 자식이라도 하나 보았다면 모를까. 안 그래도 손부를 본지 다섯 해가 넘었는데도 손이 없어 애가 닳던 중이니라. 더구나 너는 생음식도 못 먹고, 찬 음식도 못 먹지 않느냐? 절간에서 어찌 까탈스런 네 음식 수발을 든다는 말이더냐?

할머니가 손을 홰홰 내저었다.

-집에서는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그리하게 해주십시오.

자황의 고집에 아버지가 말했다.

-할머니 말씀도 틀린 것이 아니다. 장가를 들었으면 대를 이을 자식은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 주천방에 있는 용담사는 집에서도 한 식경 거리 밖에 안 되니, 거기에 가 있는 것이.

-하면 그리하겠습니다.

그날로 당장 자황은 용담사로 갔다.

머슴 하나와 함께 자광이가 책보따리를 짊어지고 따라갔다.

그날부터 자광은 이틀거리, 사흘거리로 용담사를 찾아 다녔다.

할머니 남씨가 ‘내 금쪽같은 새끼가 잘 있는지 보고 오거라. 코피는 안 쏟았는지 보고 오그라’ 하고 심부름을 시켰다. 자광에게는 차라리 그것이 나았다. 얼자인 자광은 식구들 가운데 누구도 가족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얼자는 머슴취급이었다.

어미가 종이니까, 자식도 종인 것이었다.

머슴들과 함께 산으로 나무를 다니고 풀을 베어 날랐다. 자광이 나무를 하고 풀을 베면서도 글공부를 하고 무술을 단련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머슴들의 호의 때문이었다.

부엌에서 찬모노릇을 하는 어미가 머슴들한테 넉넉하게 인심을 썼다. 가끔은 할머니 남씨 모르게 머슴들의 밥그릇 속에 계란을 심어 주기도 했고, 큰 사랑에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사랑에서 물리는 기름진 육고기 안주를 머슴들의 밥상에 올려주기도 했다.

또한 자광은 머슴들의 스승이었다. 나이 세 살이 넘으면서 머슴들한테 언문을 가르쳤다. 사람이 최소한 자기 이름자는 쓸 줄 알아야 한다면서 밤이면 슬며시 찾아가 가갸거겨를 가르쳤다.

-허허, 이것이 박갑돌이라는 내 이름자라는 말이제?

숯으로 자기 이름자를 써 보이며 박갑돌이 껄껄 웃었다.

산에 나무를 가도, 들로 풀을 베러가도 머슴들이 자광이 몫부터 채워 주었다. 그걸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되었다.

한 나절에 나무건 풀이건 한 짐만 하면 되었으므로 나머지 시간은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작은 사랑을 기웃거리며 도둑공부를 했다.

<다음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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