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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공행상 (論功行賞)

기사승인 2021.06.11  02: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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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할 논(론) :공 공  :갈 행, 대열 향  賞:상줄 상

공적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알맞은 상을 내림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운 데에는 개국공신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후(後)에 그는 공적(功績)의 많고 적음에 따라 깍듯이 예우해 주었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인 것이다. 중국의 경우 대표적인 논공행상(論功行賞)하면 주(周)나라를 꼽을 수 있다.

낚시꾼 출신인 강태공(姜太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으므로 무왕(武王)은 그를 제(齊)에 봉했다. 또 많은 공신과 왕족을 제후(諸侯)에 봉함으로써 주는 봉건제도(封建制度)를 실시하게 된다.

도움을 준 이상 그 對價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응분의 보상이 없다면 실망·분노가 생길 수도 있다.

항우(項羽)는 진(秦)을 멸망시킨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이 공평하지 못했다.

총 18왕(王)을 봉했지만 불만을 품지 않은 자(者)가 없었다. 그중 가장 불만이 많았던 자(者)가 유방(劉邦)이었다.

결국 항우(項羽)를 타도하고 한(漢)을 세우니 잘못된 논공행상(論功行賞)으로 왕조가 바뀐 예다.

또 당태종(唐太宗·李世民)은 아버지 이연(李淵·唐高祖)을 도와 수(隋)를 무너뜨리고 당(唐)을 세우는데 가장 혁혁한 공(功)을 세운이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었으므로 고조(高祖)는 왕위를 큰 아들 이건성(李建成)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극도의 불만을 느낀 그는 마침내 변을 일으켜(현무문의 변 玄武門의 變) 형을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 왕위를 물려받았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은 공정 합당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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