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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창(國唱) 송만갑 <10>

기사승인 2020.09.10  03: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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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안 되지라. 안 되고 말고라. 만약 그때 스승님께서 그리되셨으면 조선의 판소리는 누가 지키고, 그 재미있는 창극은 누가 만든다요? 시름많은 백성들의 가슴언 누가 달래준다요.”

이화중선의 말에 송만갑이 ‘니가 시방 백성이라고 했느냐?’ 하고 물었다.

“스승님이 그리 기를 쓰고 소리공부럴 허신 것이 다 백성 사랑허는 맴이 아니었든가요?”

“허허허, 니가 그것얼 어찌 알았느냐?”

“구례 오부자 어르신이 그러시등구만요. 스승님께서 자기 소리 잘허는 것만 자랑헐라고 혔으면 패려자손이라는 험담꺼정 들어가면서 소리에 기름칠얼 허시지는 안 혔을 것이라고라.”

“그 말이 맞니라. 나이 어려서는 어런들이 잘 헌다, 잘 헌다, 허신깨, 내가 참말로 잘허는줄만 알았구나. 소년 명창이 났다, 소년 명창이 났다, 헌깨, 내가 참말로 소년 명창인줄만 알았구나. 나이 어릴 때사 그랬제. 나 하나 명창이라고 소문이 나면 대감집이며 부자집에서 가마를 보내 불르면 내가 최고다, 허는 자만심에 소리공부럴 혔제. 헌디 언제가부터, 아매 아부님헌테 쫓겨나고 팔도럴 유랑허고 댕김서 소리럴 헐 때부터였을 것이니라. 소리꾼언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을 위해서 소리를 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고 핍박받고 수탈당허는 백성덜얼 위해서 소리럴 혀야헌다고 말이니라. 백성이 즐거워허지 않는 소리가 소리더냐? 백성이 알아듣지 못허는 소리가 소리더냐?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그래도 스승님의 소리는 누가 뭐래도 동편제라고 허등구만요. 송문의 법제럴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무겁고 딱딱헌 동편제에 스승님 나름대로 백성이 듣기 좋그로 부른 소리라고 허등구만요.”

“본바탕이야 어디로 안 간다고 혔잖느냐?”

“헌디, 스승님. 황제폐하 앞에서는 소리를 혀셨습니까?”

“암 했제. 국창이 되었제. 궁궐에 들어가 황제폐하 앞에서 소리허는 것얼 소리꾼이 과거본다고 혔는디, 선비들이 과거장에서 과거를 볼 때 소리꾼이 황제폐하 앞에서 소리헐 때만큼이나 떨릴까? 김창환 명창의 안내로 궁궐에 들어갔는디, 황금빛 용포를 입으시고 용상에 떡허니 앉아 계시는 황제폐하를 우럴어 보니, 가슴이 오두방정얼 떨더구나.”

“그리 떨렸으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왔겄구만요.”

“첨에사 그랬제. 한참얼 떨고 앉아있다본깨, 이러다가 내가 소리허로 들어와서 소리넌 못 허고 사시나무 떨 듯 떨다가 물러나겄구나, 허는 생각이 들제 머겄냐. 소리도 못허고 물러날 것을 생각허다 본깨 내가 황제 앞에서 소리 한 대목허는 것이 소원이라시던, 국창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시던 아부님의 얼굴이 떠오름서 오기가 생기더구나. 그래서 내가 마음을 고쳐 묵었니라. 여그넌 황제폐하 앞이 아니라, 내가 늘상 소리공부허던 지리산 자락이고, 내 소리에 어깨춤 추며 추임새 넣던 시골 동네 아낙들 앞이라고 말이니라. 헌깨 마음이 편해짐서 소리가 술술 나오드라.”

송만갑이 빙그레 웃었다.

<다음호에 계속>

 

남원뉴스 news@namwonnews.com

<저작권자 © 남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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